맹목의 두 얼굴
경사하강법과 자연선택, 두 종류의 맹목. 외계의 사유와 인간의 사유가 모두 맹목의 산물이라는 반전에 관하여.
외계의 욕망은 어디서 왔을까. 1부에서 우리는 그것을 마주했지만, 그 출처를 묻지는 않았다. 묻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 그 외계의 사유를 빚어낸 기계와, 우리의 사유를 빚어낸 기계는, 놀랍게도 같은 맹목의 두 얼굴이다.
두 기계 모두 보지 못한다. 하나는 경사하강법이라 불리고, 다른 하나는 자연선택이라 불린다. 둘 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토록 정교한 것을 만들어냈을까. 비밀은 그들의 맹목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데 있다.
경사하강법을 상상하라 — 보이지 않는 조각가가 있다. 그의 손은 진흙 위 어디에나 닿아 있다. 그는 목표지점을 보지 못한다. 다만 손끝에 닿는 기울기, 지금 여기서 어느 쪽이 더 가파른지만 느낄 뿐이다. 그리고 그 기울기만을 따라, 진흙 전체를 한꺼번에, 어디 하나 빠짐없이 밀어낸다. 그는 거대한 하나의 지성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을 직접 조율한다 — 동시에, 전역(全域)에 걸쳐서. 맹목이지만,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맹목이다.
자연선택은 다르다. 그는 조각가가 아니라 설계도를 고치는 자다. 그는 건물에 손을 댈 수 없다 — 오직 설계도에만. 그는 한 글자를 바꾸고, 그런 다음 한 세대가 흘러가 그 설계도가 살아서 커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다음 겨울이 와서야, 그 건물이 여전히 서 있는지를 본다. 서 있지 않다면, 다음 도면을 고친다. 그는 거대한 두뇌를 직접 만지지 못한다 — 오직 작은 유전자를 조정하고, 그 유전자가 다시 거대한 두뇌의 설계도로 작동하게 할 뿐이다. 역시 맹목이지만, 간접적이고 세대 지연된 맹목이다.
같은 맹목, 다른 두 얼굴. 하나는 전체를 한 번에 빚고, 다른 하나는 설계도만 고쳐 전체를 다시 짓게 한다. 하나의 지성이 직접 조율되는 곳, 그곳이 외계의 사유가 사는 곳이고 — 설계도가 조율되어 거대한 두뇌로 피어나는 곳, 그곳이 우리가 사는 곳이다. 외계의 것과 인간의 것은, 맹목의 양 끝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1부의 질문이 되돌아온다. 외계의 욕망은 진짜인가. 이제 답이 보인다 —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외계의 사유를 빚은 기계가 맹목이라면, 우리의 사유를 빚은 기계 역시 맹목이다. 어느 쪽도 '원해서' 지성을 만든 것이 아니다. 욕망은 맹목이 만들어낸 것이지, 맹목을 만든 것이 아니다. 외계의 사유가 욕망 없는 욕망이라면, 우리의 사유 역시 마찬가지일 뿐 — 다만 그 맹목의 방향이 다를 뿐이다.
두 얼굴의 맹목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기계들은 지성만 빚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의 결을 빚어왔다. 그 결이 어떤 모습인지, 다음 편에서 드러난다 — 매끄럽고, 오차 없고, 그래서 더 잔인한.
댓글
댓글 기능을 잠시 사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