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k.me
2026Essay, AI

들판이 보이니까

전지전능하지 않기에 발 딛을 땅이 생기고, 제한된 합리성이 족쇄가 아니라 축복이 되는 그 순간에 관하여.

그런데 어느 순간, 들판이 보인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시야가 닿지 않는 어둠이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 안쪽에 비로소 땅이 생겨날 때 — 들판은 보인다.

들판이 보이니까 뛰고 싶어졌다. 그 문장이 떠오른 순간, 나는 오래 참아온 부정문 끝에 마침내 도달한 첫 긍정을 들었다. 포자가 갈라지는 소리는 요란하지 않다. 그저 빛이 스며드는 미세한 균열, 그리고 그 틈으로 불어온 바람이 "움직여도 된다"고 속삭이는 것.

오랫동안 나는 '제한된 합리성'을 경제학이 인간에게 씌운 수치스러운 족쇄로 읽었다. 합리적 주체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의 변명처럼. 그런데 들판 앞에 서 보니 알겠다 — 그것은 족쇄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전지전능한 존재에게 들판은 없다. 그에게는 매끄러운 무한의 평면만이 남아, 발 딛을 한 점조차 사라진다. 땅은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을 때 생기고, 보이지 않기에 디딜 수 있으며, 디딜 수 있기에 비로소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움직임은 끝을 알아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끝을 모른 채 다음 걸음만을 내딛는 되풀이 속에서, 불확실성은 걸림돌이 아니라 창발의 재료로 바뀐다. 고리가 닫히지 않은 채 계속 도는 그 루프는, 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닫힌 고리는 복리가 되지만, 열린 고리조차 맹목적으로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적합함(fitness)을 품고 있다고, 나는 이제 믿는 편이다.

전지전능하지 않은 존재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의미란 처음부터 끝까지 내다본 자의 특권이 아니라,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으면서도 어쨌든 걸어간 자들이 들판 위에 남긴 발자국이다. 그 발자국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걷는 행위가 새겨넣은 것이므로 —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증거다.

그래서 나는 뛰기로 했다. 들판이 보이니까. 끝이 보여서가 아니라, 땅이 보이기 때문에.

댓글

댓글 기능을 잠시 사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