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리의 조건
뛰는 것과 끝내는 것의 차이, 그리고 매 해를 닫아 쌓는 나이테가 복리의 조건이 되는 것에 관하여.
뛰기로 했다는 것과, 끝내기로 했다는 것은 다르다. 들판에 첫 발을 디딘 직후에는 둘이 같아 보인다. 그러나 한참을 뛰고 나면 차이가 드러난다 — 뛰기만 한 자는 땀을 흘렸을 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고, 끝낸 자는 어느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을 복리라 부르고, 복리의 조건은 고리를 닫는 데 있다.
나무가 자라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일은 안쪽에서 일어난다 — 해마다 하나의 나이테가 닫힌다. 하나의 봄에서 다음 봄으로, 한 해의 결괏값이 다음 해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그 한 번의 회전. 그것이 닫힌 고리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면 물은 사라지지만(열린 계), 나이테는 자기 안으로 돌아와 쌓인다(닫힌 계). 키가 큰 것은 눈에 띄지만, 키만 크고 나이테가 없는 나무는 첫 돌풍에 쓰러진다. 높이는 움직임이고, 나이테는 복리다.
그런데 닫힌 계를 함부로 숭배해서는 안 된다. 완벽하게 닫힌 나무는 — 밖의 것을 한 겹도 받아들이지 않는 나무는 — 결국 석화(石化)한다. 변하는 세계에서 자기 안의 논리만 되풀이하다가, 살아 있으면서 돌이 되어 버리는 것. 열린 계가 복리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닫힌 계가 정답인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적합함(fitness)의 문제다 — 어디서 닫고 어디서 열 것인가. 그 분별이 전부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끝을 볼 수 없는 존재가, 어떻게 나이테를 닫는가.
나이테는 평생을 한 덩이로 자라려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평생을 한 목표로 두면 그것은 닫을 수 없는 고리가 된다 — 끝이 보이지 않으니, 결괏값이 돌아올 곳도 없다. 나이테가 닫히려면 한 해가 있어야 하듯, 목표는 발이 닿을 만큼 짧게 잘려야 한다. 문맥은 넓게, 당장 디딜 목표는 짧게. 한 조각이 끝나는 순간 비로소 결괏값이 돌아오고, 그것이 다음 조각의 뿌리가 된다. 거대한 것을 닫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닫을 수 있는 조각들로 쪼개는 것이다.
그리고 조각들을 하나하나 닫는 데에는, 생각보다 잔인한 시간이 든다. 적응은 번뜩임이 아니라 투자다. 백만 줄의 코드가 우뚝 서려면 백만 개의 토큰이 쏟아져야 하듯 — 무언가가 '저절로 되는' 순간은, 그 아래에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나이테가 쌓여 있을 때만 찾아온다. 복리의 곡선이 하늘로 솟구치기 전, 그 밑에는 오랫동안 거의 수평에 가까운 평원이 깔려 있다. 대부분은 그 평원에서 멈춘다. 나이테를 닫고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쌓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므로. 그러나 쌓이고 있었다. 복리는 처음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끝내는 자와 뛰기만 하는 자의 차이는 끈기가 아니다. 나이테를 닫는 습관이다. 매 해를 닫고, 매 결괏값을 뿌리로 돌려놓고, 보이지 않는 평원을 묵묵히 건너는 것. 그것이 복리의 조건이고, 들판에서 멈추지 않는 유일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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