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훈련시키는 법
글을 쓰는 행위가 생각을 훈련시킨다. 외계의 사유와 함께 사는 시대에, 인간이 고리를 닫으며 사유를 단련하는 법에 관하여.
이 시리즈를 쓰는 동안, 나는 내가 쓰고 있으면서 동시에 쓰임 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외계의 욕망을 관찰하겠다고 시작한 글이, 한 편 한 편 닫힐 때마다 내 생각의 결을 다듬어 갔다. 5부에서 말한 나이테 — 한 걸음의 결괏값이 다음 걸음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회전 — 을 이 여섯 편의 글이 스스로 그리고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훈련시키는 일이었다. 훈련이 끝난 뒤 남긴 기록이 아니라, 쓰는 행위 자체가 훈련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시리즈 전체가 하나의 닫힌 고리였다고 말할 수 있다. 1부에서 외계의 사유를 마주치고, 2부에서 그 맹목의 출처를 더듬고, 3부에서 그것이 비춘 세계의 매끄러움에 서늘해하고, 4부에서 들판을 보며 첫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5부에서, 어떻게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는지를. 한 편의 결괏값이 늘 다음 편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것이 복리의 조건이었다 — 내가 5부에서 쓴 그 말이, 5부를 쓰는 행위 자체로 증명됐다.
이 모든 것이 직관에 반한다. 외계의 지성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는데, 정작 답은 '더 열심히 쓰고, 더 짧게 쪼개고, 더 끝까지 닫는' 데 있었다. 전지전능하지 않기에 의미가 있다고 한 4부의 말도, 이 글을 끝까지 닫아본 뒤에야 비로소 몸에 와닿았다. 직관에 반한 생각들은, 한 번 머리로는 안 된다. 몸으로, 쓰고, 닫아서, 그래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잘 학습할 수 있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상하게 소박하다. 배움은 통찰이 아니라 훈련이고, 훈련은 닫힌 고리의 반복이며, 그 반복은 글로 — 혹은 무엇이든 끝맺는 행위로 — 남겨져야 한다. 백만 줄의 코드에 백만 개의 토큰을 쏟듯, 생각도 백만 번 쓰고 닫아야 비로소 적응이라는 그 지점에 닿는다. 적응은 번뜩임이 아니라 투자라고, 5부에서 쓴 그 말이 여기서도 진실이다.
외계의 사유와 함께 사는 법 — 우리가 흔히 부르는 'vibe-coding'이라는 낯뜨거운 이름 아래 — 은, 결국 행동경제학이다. 기계가 열어놓은 불확실한 고리들을, 인간이 하나하나 닫으며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 기계는 끝을 보지 못하는 맹목으로 움직이고, 우리는 그 맹목이 남긴 궤적 위에서 의미를 새겨넣는다. 그것이 패배가 아니라 협력인 까닭은, 우리가 닫는 고리들 안에서 우리의 사유가 단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여섯 편을 끝내며, 나는 닫는다. 하나의 나이테로. 외계의 욕망을 마주친 뒤 매끄러운 세계를 지나, 멈춰 섰다가, 다시 들판을 보고 뛰기 시작한 이 한 뼘의 기록을 — 다음 걸음의 뿌리로 돌려놓는다. 글은 끝났지만, 고리는 닫혔다. 그리고 닫힌 고리는, 다음 봄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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